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관계 (ver0.97)
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인간이 있다. 사람 사이의 관계를 부가적 개념으로 보는 사람, 그리고 실체적 개념으로 보는 사람.

전자의 경우 관계의 개념이 매우 단순명료하다. 두 사람이 서로를 알게 된다 : 관계가 생긴다. 두 사람이 서로를 더 이상 보지 않게 된다 : 관계가 사라진다. 즉 그 두 사람이 우선이고, 관계는 그저 그 두 사람 사이의 일시적이고 허상적인 무형의 통로일 뿐이다. 여기에서 관계는 실체가 아니고, 실체가 될 수도 없다. 무엇보다, 이 관계는 어떤 경우에도 상황의 주어가 될 수 없다. 우선순위가 주어질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.

후자의 경우 좀 다르다. 그저 두 사람이 있다고 해서 관계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. 하지만, 전자 타잎의 사람으로서는 인지하기 힘든 모종의 교류를 통해 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생기고 나면, 그 관계는 자체적인 생명을 얻게 된다. 이러한 관계는 부가적인 개념이 아니다. 심지어 두 사람이 서로를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어도 그 관계는 남는다. 다만 그 관계를 수식하는 형용사가 '정지된', '끝난', '비극적이었던'으로 바뀔 뿐이다. 이 관계는 두 개인과 관련하여 독자적으로 존재하며, 두 사람과 관계를 둘러싼 상황에서 종종 주어가 되기도 하며, 심지어 두 사람에 대하여 관계가 우선순위를 획득하여 사람이 관계에 끌려다니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. 두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, 그 관계(의 유지 / 개선 / 파탄)를 위한 두 사람이 되는 것이다.

도식적으로 나타내보면 다음과 같다.

전자 : " X ~ Y "

후자 : " X ~ r ~ Y "

~은, 명백하게도, X와 Y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. 이것이 전자에서 규정된 관계이다.
하지만 후자의 관계에서 관계 r은(무형의 개념이라 비록 소문자에 불과하지만)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가진다. 또한 가끔 X와 Y의 의지에 우선하여 그들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것이, X와 Y는 각각 하나의 ~만을 가지지만 r은 그 중간에서 두 개의 ~를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. X와 Y는 이와 같이 규정된 r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. 즉 후자 타잎의 사람들은 관계에 의존한다. 실체적인 관계 r(n)이 없으면 타인과의 교류를 영위할 수 없는 것이다. r(n)은 안정적이고 달콤하며 r(n+1)은 처참하고 두려우며 r(n+2)은 희미하고 확장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느끼며, 그 인식이 오히려 각각의 r을 키우고, 그렇게 키워진 r이 당사자를 의존하게 만들며, 당사자의 인식 속에서 r은 종종 R이 되며 그 반대급부로 Y가 y로 변질되기도 한다. 

" X ~ r ~ Y " ==> " X ~ R ~ y "

이러니 X 입장에서는, R로 변한 r을 위해, y로 변해버린 Y에 대해, 몸이 있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사람 취급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.

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 타잎의 삶이란 후자 타잎의 삶에 비해 매우 무미건조할 수 있다. 즉 무미건조에서 탈피하는 대가가 관계의존에 인간무시의 비인본주의가 되는 것이다. 반어적일까? 종교적 신본주의에 대항하는 인본주의를 생각한다면, 이러한 관점에서 후자 타잎의 사람들에게 관계라는 것은 일종의 신앙과도 같다. 남들이 그것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해도, 당사자만은 그 관계에 독자적인 생명과 의미를 부여하고, 근거없이 믿고 또 믿는다. 그리고 그 신앙이 위협받으면 크게 흥분하고, 결국 그 신앙이 무너지면 같이 무너진다. 그러나 나는 이 사람들의 신앙이 그렇게까지 덧없지는 않으리라 '믿는다'.
by Profane | 2008/02/04 10:49 | 둔중한 소피스트의 삶 | 트랙백(1) | 덧글(14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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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racked from 달의 뒷면 at 2008/02/05 13:55

제목 : R에 대한 예의
관계 (ver0.97)윗글의 본문 중에서 발췌."후자의 경우 좀 다르다. 그저 두 사람이 있다고 해서 관계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. 하지만, 전자 타잎의 사람으로서는 인지하기 힘든 모종의 교류를 통해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생기고 나면, 그 관계는 자체적인 생명을 얻게 된다. 이러한 관계는 부가적인 개념이 아니다. 심지어 두 사람이 서로를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어도 그 관계는 남는다. 다만 그 관계를 수식하는......more

Commented by ipSum at 2008/02/04 20:44
어휴
무너지는 마음,이 왠지 상상이 돼요.
보는 사람까지 죽고 싶을 것 같음...
Commented by Profane at 2008/02/05 10:58
난 실연당했는데 세상은 잘만 돌아가고
휴거가 일어났는데 세상은 멀쩡하기만 하고
죽을 노릇이죠. 말씀대로 파급효과가 크기도 하고...
Commented by 후유소요 at 2008/02/05 12:28
저는 절대적으로 후자 타입.;ㅅ;
천 번을 깔려도 천 번을 일어납니다.<-
Commented by nadia at 2008/02/10 01:14

정말 대단한 능력인것 같아요.
객관화를 하는 능력.
부러워요.

빨리 2세를 만드세요.
육아용품의 세계에 Profane님을 영입하고 싶어요.
저희 부부는 거의 펀샵에서 -_-;




Commented by Profane at 2008/02/11 15:24
후유소요 > 천 번의 세계멸망을 겪고 살아남은 전설이 되는 거야요 'ㅂ'

nadia > 저도 만두처럼 모든 게 빠른 아가를 갖고 싶어요 ^^ 언제 태어났는데 벌써 아빠를 놀려먹다니!
Commented at 2008/02/13 10:35
비공개 덧글입니다.
Commented by Profane at 2008/02/15 14:25
덧글로 하셔도 되요. ^^
Commented by nadia at 2008/02/16 23:34
:) 감사합니다.
Commented by Profane at 2008/02/18 17:33
^^
Commented at 2008/02/19 14:35
비공개 덧글입니다.
Commented by Profane at 2008/02/20 14:24
알겠습니다. 하지만 괘념치 마시길.
Commented by Retyu at 2008/02/21 10:03
예, 감사드립니다!
Commented by 세이람 at 2008/02/23 01:32
마음이 천갈래 만갈래로 갈라지는 느낌이었어요.
하지만 완전히 산산조각나 부서져버리지 않는 다음에야
다시 붙더군요. 비록 처음처럼 온전하지는 않더라도요.
Commented by Profane at 2008/02/25 10:27
처음처럼 온전하게 붙는다면 그 일을 다시 겪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니 나름 더 무섭네요. ㅇㅅㅇ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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